뭐 이래.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강당이었다. 입학식이라 아직 서로 아는 애들이 없어서 조용했다. 내가 다니게 될 곳은 기독교 학교로 예배를 보는 것도 겸하는 곳이라 낡고 길쭉한 교회용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비교적 뒷자리에 있었고, 그는 뒷줄 복도에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지 못했다. 이미 휠체어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입학식의 흥분때문일까, 나는 그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고 있다고 예감했다. 제대로 뒤를 돌아보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같은 반이 되지 못했고 그 뒤로 몇번 마주칠때마다 눈을 피했다. 나는 여드름이 얼굴을 온통 뒤덮었고 몸무게 앞자리 숫자가 '6'으로 시작하는 여학생이었다. 게다가 교정기를 끼고 있고, 눈은 지독한 근시라서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끼고 있다. 이런 조건을 가졌다면, 원래 얼굴이 어떻든간에, 어떤 여자든 추녀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생활은 사회의 축소판이란 말은 맞다. 이렇게 못생긴 얼굴이라면, 운동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지 않는다면 아이들로부터 배척당한다.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다행히 공부도, 운동도 잘했다. 그래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살아 남았다는 것은, 따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중간 정도의 그룹에 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지만 딱히 따를 시킬 이유도 없는 아이들은 가장 밑에서 은따 그룹을 형성한다.

1-2반에도 그러한 종류의 여자애 세명이 몰려 다녔다. 한명은 바이올린을 켰는데, 키가 작고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스스로는 공주처럼 굴기도 해서, 퇴색한 분홍색 같은 느낌의 여자애였다. 다른 두명은 극도로 평범해서 어떤 얼굴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름대로 그 '퇴색한 분홍색'인 아이가 리더였다. 퇴색한 분홍색이란, 빛바랜 유화와 같은 것이다. ..

그들은 서로를 증오하지만 다른 친구들을 사귀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어올 수는 있지만 그 자신이 다른 애들에게 말을 걸 수는 없다. 그것은 규칙이었다. 아무도 입밖에 내지 않지만,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반에는 '잘 나가는' 남자애들이 있었다. 키도 크고 싸움도 잘하고, 반에서 자기들 밖에 없는 듯 '여름방학때 만난 여대생'에 대해 떠들어댄다. 여자아이들이 싫어하는 척하면서도 사실을 말을 걸어주기를 바랬다. "남자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여자애"라는 말은 훈장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이었다. 밤의 학교는 낮의 밝고 왁자지껄한 아이들때문에 소모된 기운을 보상받으려는 듯 침울했다. 콘크리트 바닥의 복도의 끝부분은 어두침침해서 쭉 가다보면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연결될 것 같았고, 복도의 형광등은 눈물 흘리는 처녀귀신처럼 깜빡깜빡거렸다. 몽둥이를 든 뚱뚱한 국어선생은 담력 체험할때의 귀신처럼 갑자기 나타나 딴짓하고 있는 아이들의 엉덩이를 갈겼다. 우리는 그걸 '매 타작'이라고 불렀다. 타작하는 풍경을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농부가 일년동안 피땀흘러 지은 벼를 거두어 들일 때처럼 정성스러웠고 동작 하나하나에 한이 느껴졌다.

쉬는 시간은


















 
by 여대생h | 2007/02/15 00:13 | 트랙백 | 덧글(0)
상표 게임

나는 못생긴 여자아이였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내 외모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성껏 거울을 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내 얼굴같은 것보다는 좀 더 중요한 일에 관심을 기울일 거라고 믿었다. 외모라는 것이 인간관계에 막대한 관심을 미친다는걸 깨달은 것은 중학생이 되어 여드름이 난 후였다.

친구가 한명도 없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게 있어야 된다는 생각도 미처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럽지도 않았다. 억지로 당당한게 군게 아니라 '친구가 없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내가 지금 두바퀴 반 공중회전을 못한다든가 하는 이유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세상을 사는 법'이라는 매뉴얼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다. 머리는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번씩 감았고, 이는 하루에 한번 15초만 닦았다.  수업시간이 흥미로워서가 아니라 '수업시간에 몰래 떠들어도 된다'라는 팁을 몰랐기 때문에 칠판만을 응시했다. '집에 가서는 공부한 걸 복습한다'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집에서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때엔 내 인생에 통틀어 가장 성적이 좋았다.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고 방과 후에 학원을 다니게 된 후에는 오히려 성적이 떨어졌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안경을 벗고 들어간 목욕탕에서처럼 모든게 희뿌옇고,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반장의 얼굴만은 기억이 난다. 하얗고 통통한 기니피그 같은 여자애였다. 그 애는 쉬는 시간이면 남자애들과 어울려 지우개따먹기를 했지만 나는 책상에 앉아 칠판의 녹색을 바라보며 '시끄러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 애가 받은 상표들... 빨강, 파랑, 노랑, 분홍, 보라색의 꽃밭처럼 알록달록한 무수한 상표들이었다.

게시판에는 포도송이가 그려진 종이가 붙어있었다. 반 아이들 수만큼 정확히 50장의 종이가 있었고, 각장에는 개개인의 이름이 써있었다. 그리고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선생님이 상표를 한장씩 줬다. 당연히 반장의 포도는 가장 탐스러웠고 나의 포도는 아직 투명했다. 이 상표들은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는 공정함보다는 불공정함이, 객관적인 규칙보다는 주관적인 변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했다.

선생님은 언제나 곤색 양복을 입었다. 그 창백한 푸른 색은 그의 희고 쪼글거리는 얼굴이나 붉고 얇은 입술, 은색 안경테와 묘하게 어울렸다. 그는 '실기 학습' 수업 중에 종종 "재밌는 이야기를 해줄께요"라고 말했다.

"영희가 볼일을 보고 있는데, 철이가 몰래 훔쳐보는 거예요"

안경테와 선생님의 눈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그는 쓰기 시간이나 산수 시간에는 이토록 열정적이지 않았다.

"철이가 이렇게 화장실 문 밑으로 까꿍ㅡ 하고 훔쳐보는 거예요"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훔쳐보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영희는 '어머나!'하고 화들짝 놀라요"

그는 갑자기 영희가 되어 볼이 발그레해졌다. 교실 안은 조용했고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것이 우리가 알아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걸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가 산수시간이나 쓰기 시간에 한 이야기가 아닌 실습 시간에 한 이야기들만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철이와 영희는 나중에 다리 밑에서 만나요. 그러면 철이는 영희의 가슴을 살짝 만지는거예요.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아요? 반장, 말해봐요"

반장은 또박또박 말했다.

"영희와 철이는 사이가 좋아집니다"

"그래, 사이가 좋아지고 말고. 잘했어요. 상표 한개를 주겠어요"

이런 식으로 그녀의 포도송이는 스페인 일급 포도밭의 포도처럼 무르익어 갔다.  

한번은 반장이 상표를 순식간에 세개나 받은 적도 있다. 선생님이 말했다.

"화장실에서 하는 일을 마임으로 묘사하는 아이에게 상표를 주겠어요"

이번에도 여자반장은 손을 직각으로 쳐들었다. 그리고 교실 앞에 나와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그 애가 진짜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해도 이보다 더 그럴듯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만족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 아직 하나가 남았어요"

반장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오십명쯤 되는 아이들은 모두 반장의 일인극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아니, 아니야"

반장은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머리도 감았다. 선생님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화장실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 말이예요"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반장을 뭔가 달랐다. 
엉덩이를 빼고 쭈그렸고, 치마를 걷어올리는 시늉을 했고, 그러더니 변기의 물을 내렸다. 아이들은 침을 삼키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래, 바로 그거예요"

그리고 상표를 3개나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의 세계에는 질서정연함 같은게 있었다. 반장은 앞으로도 반장일 것이며, '한걸음씩 걷다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라고 또박또박 말할 것이다. 그녀 앞에는 외길의 고속 도로를 쭉 뻗어있다면, 나는 골목길을 해매고 있었다. 나의 8살은 수수께끼나 숨바꼭질같았다. 수수께끼에 답은 없었고 술래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게 아니다. 어릴때 인간의 본성은 이미 희마하게 윤곽이 잡혀있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저 이 윤곽의 속을 크레파스로 진하게 칠해나가는 것이다. 반장은 의사가 될 것인가 약사가 될 것인가와 같은, 1차선으로 갈 것인가 2차선으로 갈 것인가와 다르지 않는 문제로 가끔씩 망설이며,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유일한 고뇌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골목길은 점점 구불구불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포도송이가 가득 차면 무엇을 상품으로 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어느날 반장의 포도송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분명 탐스럽지만, 미학적인 포도가 아니다. 물론 8살짜리였으므로 '미학적인' 이란 말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 그런 관념을 갖고 있었다.

빨간 색과 파란색을 바로 옆에 붙여놓아서 선명하게 대비되었지만 촌스러웠다. 아무 생각없이 더덕더덕 붙여놓은 이 포도로 포도주를 빚어봤자 일급 포도주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검정색 상표와 빨간색 상표를 일렬로 배열한 포도송이를 상상했다.

그러나 그런 상표를 갖기 위해선 수업시간에 누구보다 먼저 손을 번쩍 들어야할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 반항심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도 두려웠다. 내가 말을 하면 그 동안에 그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 나의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말을 들어주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 선생님도 학기초에는 "말을 해봐요, 응?"하고 나를 얼렀다. 하지만 내가 울음을 터뜨릴망정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아이라는 걸 눈치챘다.

나는 잠이 들때나

























 

by 여대생h | 2007/01/21 21:18 | 트랙백 | 덧글(0)
레포트를 쓰는데 걸리는 시간
1. 레포트를 써야겠다고 결심하며 만화책을 읽는 시간: 5시간

2. 레포트를 써야겠다고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서핑을 하는 시간: 2시간

3. 레포트를 쓰면서 딴짓하는 시간: 2시간

4. 레포트를 쓰는 순수한 시간: 2시간

이렇게 총 11시간이 걸린다. -_-

지금까지 7시간시간동안 준비했으니, 4시간만 더 하면 되겠구나. 화이링!
by 여대생h | 2006/05/26 15:21 | 게으른 곰의 날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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